안전 의식

공사현장

 

산비틀에서 공사하는 인부들. 최소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철제 구조물(발 넓이도 안 되는)에 나무와 구조물을 붙잡고 올라선 인부들에게 작업반장은 말한다. “거기 잡고 올라가! 올라가다가 손가락 좀 찍힌다고 죽나 어디. 그냥 올라가라고” 그 말을 미처 못 듣고 있던 인부들이 몇 번의 보챔 끝에 듣고는 말을 받아친다. “뭐?” “뭐라하노 씨바..” 작업반장은 다시 자기 할 말만 한다. 이미 멀리 떨어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다. “봐봐. 밀리잖아.” 그런 그들을 뒤로 하고 나는 갈 길을 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

한 여자가 급히 계단을 내려간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인파를 손으로 밀쳐내며 미끄러지듯 막 도착한 지하철 앞에 선다. 그녀는 열차 안의 한 아주머니에게 외친다. 이거 불광가는 것 맞아요? 휘둥구레진 눈망울들이 그녀를 쳐다본다. 아니오, 라는 말이 이것 불광가는 것 맞냐고, 라는 말에 파묻힌다. 아주머니는 맞은편 걸 타세요라 외치지만 허공에 퍼진 말은 안개처럼 곧 바닥에 가라앉는다. 어디를? 이거는 아니고? 그녀는 여전히 횡설수설하며 두리번거린다.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굴리며 선 그녀의 뒤엔 그녀에게 밀쳐진 노인이 쓰러질듯한 자세로 난간을 붙잡고 서 있다. 노인이 황망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본다. 그 사이, 지하철의 문은 닫히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노인은 안경을 고쳐 쓴 채 계단을 오른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노인

뚝섬역 인근 한강공원에서 한 노파가 뒤뚱거리며 공용 쓰레기통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녹색 쓰레기통에 고개를 깊숙이 처박고는 한참 쓰레기통을 뒤졌다. 노파는 봉지 하나를 뜯어서 쓰레기통 앞에 흩뿌렸다. 비둘기가 한두 마리씩 노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비둘기는 머리를 바닥에 박아대며 먹이를 먹었다. 얼마나 굶주린 듯. 방금 무언가를 먹었다는 사실조차 금세 잊은 채 다시 부리를 쪼아대는 새들. 선봉대가 무사히 음식들을 먹는 광경을 본 나머지 비둘기들이 노파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노파를 따랐고, 노파는 봉지를 휘어잡고 튿고 거리에 또다시 뿌려댔다. 바닥은 음식물 찌꺼기로 뒤덮였고, 비둘기들의 찍찍거리는 소리와 비릿한 냄새가 거리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먼발치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중년의 부부가 그 상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려댔으나 주변을 오가던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녀를 지나쳤다. 나 또한 잠깐의 관찰을 뒤로하고 금세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하늘은 흐렸다.

고독한 방랑자들

 

늦은 밤,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서 한 노부부가 대화하는 중이었다. 그 옆을 무심코 지나가는데 머지않은 곳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보였다. 후줄근한 점퍼를 입은 채 구부정한 자세로 벤치에 앉아 있던 그는 노부부를 보며 연신 히죽거렸다. 괴이한 모습에 그를 보며 걷다가 그만 노인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황급히 웃음을 거두어 삼킨 그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홱 하니 돌려 버렸다. 그리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자신의 외로움을 칠흑 속에 감춰버리려는 듯.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낮밤 가리지 않고 놀이터 구석에 앉아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훔쳐보던 사람임을. 그를 포함해 여럿 있었다. 시간을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 된 노인들. 혼자 밥 먹고 혼자 자면서 매일 한 걸음씩 죽음으로 걸어가는 고독자들. 갈 데 없고 반기는 이 없으나 자신의 고독을 감추려 부단히 애쓰는 부랑자들. 현실에 치이고 사람에 차여 혼자 스러져가는 시대의 재건자들. 그들은 사람들 속에 있었으나 혼자였다. 고독한 방랑자였다.

왜 거리일기인가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던 거리

 

나는 삶을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 배웠다. 거리의 논리로 어른의 생활을 하나씩 깨쳐나갔고, 수많은 욕망의 전쟁터 속에서 생의 고단함과 추접스러움, 악어의 눈물과 손익 계산에 따라 계산된 기망, 두려움과 욕망을 쫓으며 사는 현실의 논리를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빈자의 터전에서 태어났으므로 가는 곳마다 걸인과 구걸꾼, 노숙자와 병자, 실패자와 도망자가 즐비했고, 그들 사이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체득하며 커왔다. 그것은 지난한 일이었지만, 나에게 남다른 깊이를 선물한 생명과 죽음의 원천이었으며, 세상을 더 깊이 관찰하고 나만의 시각을 가지게 한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지독한 현실 그 자체였다.

거리의 삶은 모두 실전의 영역에 있다. 아무리 고상한 인간이라 해도 먹고 싸고 자는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고,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밥벌이를 하고 잠을 자는 건 동물과 다를 바 없으며, 가지고 싶다고 하여 옷을 수백 벌을 동시에 껴입을 수 없고, 수백 그릇의 음식을 동시에 먹을 수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늘 현실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거리에서 수많은 방랑꾼을 보았다. 그들의 눈은 야생에 길들여진 동물의 눈과 닮아 있었다. 생존의 의미보다 생존의 본능만 남은 색이 바랜 눈은 대체로 초점이 없거나 희미했고, 무표정한 얼굴로 죽은 듯 살아 있었다. 아토피와 이차감염, 온갖 수술로 힘겨워하던 시절, 나는 거리와 삶의 이면 모습들을 보며 왜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물었다. 마치 나의 고통이 나를 뒤덮을 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블로그와 웹사이트의 기록은 모두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의미와 답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따.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병을 얻었으므로 철저하게 현실을 포착했고 사진으로 남기며 동시에 글로 승화시켰다. 언젠가부터 나의 눈은 골목과 거리와 인간관계와 사람의 생활 터전인 환경을 비춘다. 세상이 골목이 아닌 대로를 비추는 동안 또 시골이 아닌 도시를, 지방이 아닌 서울을, 노인이 아닌 청년을 비추는 동안 나는 뭍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시선을 옮겨놓는다. 끊임없이 미디어가 비추는 주류의 세상 이면에는 차마 그림자조차 닿지 않는 시대의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삶의 이유와 의미를 매일 발견한다. 그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