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던 거리
나는 삶을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 배웠다. 거리의 논리로 어른의 생활을 하나씩 깨쳐나갔고, 수많은 욕망의 전쟁터 속에서 생의 고단함과 추접스러움, 악어의 눈물과 손익 계산에 따라 계산된 기망, 두려움과 욕망을 쫓으며 사는 현실의 논리를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빈자의 터전에서 태어났으므로 가는 곳마다 걸인과 구걸꾼, 노숙자와 병자, 실패자와 도망자가 즐비했고, 그들 사이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체득하며 커왔다. 그것은 지난한 일이었지만, 나에게 남다른 깊이를 선물한 생명과 죽음의 원천이었으며, 세상을 더 깊이 관찰하고 나만의 시각을 가지게 한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지독한 현실 그 자체였다.
거리의 삶은 모두 실전의 영역에 있다. 아무리 고상한 인간이라 해도 먹고 싸고 자는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고,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밥벌이를 하고 잠을 자는 건 동물과 다를 바 없으며, 가지고 싶다고 하여 옷을 수백 벌을 동시에 껴입을 수 없고, 수백 그릇의 음식을 동시에 먹을 수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늘 현실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거리에서 수많은 방랑꾼을 보았다. 그들의 눈은 야생에 길들여진 동물의 눈과 닮아 있었다. 생존의 의미보다 생존의 본능만 남은 색이 바랜 눈은 대체로 초점이 없거나 희미했고, 무표정한 얼굴로 죽은 듯 살아 있었다. 아토피와 이차감염, 온갖 수술로 힘겨워하던 시절, 나는 거리와 삶의 이면 모습들을 보며 왜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물었다. 마치 나의 고통이 나를 뒤덮을 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블로그와 웹사이트의 기록은 모두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의미와 답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따.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병을 얻었으므로 철저하게 현실을 포착했고 사진으로 남기며 동시에 글로 승화시켰다. 언젠가부터 나의 눈은 골목과 거리와 인간관계와 사람의 생활 터전인 환경을 비춘다. 세상이 골목이 아닌 대로를 비추는 동안 또 시골이 아닌 도시를, 지방이 아닌 서울을, 노인이 아닌 청년을 비추는 동안 나는 뭍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시선을 옮겨놓는다. 끊임없이 미디어가 비추는 주류의 세상 이면에는 차마 그림자조차 닿지 않는 시대의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삶의 이유와 의미를 매일 발견한다. 그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