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기대에서 현실을 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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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계절 속에 굳이 보는 건 종말이다. 새순이 올라오는 계절에 나의 눈은 주변에 흐트러져 있는 죽은 이파리들에 머물고, 환한 아이들의 미소보다 굳게 걸어잠근 뒷골목의 녹슨 철문이 아른거린다. 별종이라면 별종이고 기인이라면 기인이다. 세상만사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랑’이 전부라고 외쳤던 시기도 있었다. 그 무엇이 틀린 말이겠는가. 사람을 더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지만,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은 낙엽되어 떨어진 길섶의 이파리보다 힘없이 나풀거리며 사라져가고만 있으니 나로서는 별로 더 할 말이 없다. 누군가는 사랑의 힘으로, 생명이 움트는 기운으로, 새로운 도전의 열망으로, 자신에게 기댄 사랑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가겠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은 때로 넘어와 버렸으니, 이게 바로 샛길로 들듯이 나이를 먹은 방증이란 말인가. 나이를 먹고 갈수록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 속 빛의 기운은 잃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어째서인지 모든 것에 더 퉁명스럽고 더 무관심해져만 간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의 발로는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는 뜻이고, 무관심하다는 의미는 의미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시절을 맞이하고 있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기대에서 현실을 뺀 것’이 행복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별다른 기대가 없는데 왜 행복을 못 찾겠지?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때? 우리가 살면서 뭔가에 이유를 대잖아. 이유를 100가지도 댈 수가 있어. 그게 루저 마인드야. 자꾸 핑계대고, 자꾸 이유대고… 이런 약한 모습 안 보고 싶다는 거야. 이해했어?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할 수 있다니까, 충분히? 타협하지마 타협. 자꾸 익슈큐즈를 하지 말라고. 익슈큐즈가 아니고 솔루션을 해. 솔루션을. 네 자체 내에서.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해서 다음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이런 거 있잖아. 익스큐즈가 아니라 솔루션으로 바꾸라고.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를. 알겠지? 그래야 큰 선수 돼. 여기서만 이렇게 있을 거야? 그래, 더 큰 데 가야지. 그럼 더 큰 생각을 해야 한다니까. 편하게 못 가요. 누구든 편하게 못 가. 여기 있는 사람들 편하게 왔는 줄 알아? 아니야. 다 어렵게 했어. 너도 어려웠겠지만 더 어렵게 간 사람들 많아. 잘 할 수 있다니까. 잘해봐.”

– 신임감독 김연경 5회 김연경이 인쿠시에게.

의무로 점철된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걸 기회와 흥미로 여기는 세계로 나아가자.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하라. 자신감을 가져라. 네 안에서 솔루션을 만들어내라. 그런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이 곧 너의 삶이 되고, 보고 듣고 하는 말이 곧 네가 될 것이니 결국 다른 결과를 만들려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