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 REMEMBER YOU ARE ONE
“점점 더 외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괜찮은데요.”
“점점 더 힘들어지죠. 당신 자체로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 일 말이오. 당신 자신의 이런 측면도 여전히 가치 있고, 당신은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점점 망각해가죠. 그녀는 아직 시작 안 했소? 당신을 갉아먹지 않느냐는 말이오.”
– 영화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반쪽 짜리 세계에서 늘 세상의 반쪽만 보다 보니 자신도 반으로 쪼개져 버린 것이다. 둘로 갈라지는 건 쉬워도 하나로 다시 합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늘 좋고 싶으면 차라리 더 화끈하게 이기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누구나 어렴풋이 안다. 엄연히 존재하는 자신과 세상의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세상 모든 곳은 소셜 미디어. 이런 글을 쓰는 이곳도, 새로 만든 홈페이지도, 인스타, 스레드도 모두 비뚤어진 거울로 비추는 반쪽 짜리 세계.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던가. 누구나 주목받고 싶어하지만 실은 돈만 벌고 숨고 싶은 것. 웃는 모습만 보이고 눈물은 뒤로 감추길 바라는 것. 대가리 꽃밭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 그러나 어쩌랴. 당신의 밤은 알고 있지 않나. 끝내 외면해왔던 그늘이, 자기의 어두운 뒷모습이 언젠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자신을 덮쳐올 거라는 걸.
쇼츠에 뇌를 절이고, 생각을 죽이고, 만남을 없애고, 정신보다 화폐에만 혈안이 되어서 살다보면, 그렇게 ‘열심히’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줄 알았겠지. 끌어오르는 본심이 아닌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골몰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잖아. 마치 악보를 펼쳐놓고 음과 음 사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하나하나 계산을 해놓고 노래하는 사람에게 감동받을 일은 적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미디어에 대한 발작적인 거부감. 소셜 미디어가 활개치는 동안 더했던 것. 단 한순간도 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희미해져가고, 반쪽 짜리 행복에 취해서 자신이 둘, 셋, 넷으로 쪼개져가는지도 모르고, 웃긴 영상을 보면 자기 삶이 진짜 웃고 있는 줄 알고 착각하는.
그러나 영화가 말한 것처럼 그건 빛 아래의 그림자를 바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겠지. 결국은 나는 나를 후벼파야 함과 동시에 그것에서 완벽하게 떨어져 나오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에 끝까지 매몰되지는 않는 것. 일을 마치면 머릿속에서 일을 완벽하게 끊어내듯이, 얼마간 슬픔 속에 머물더라도 다시 빛의 세계로 돌아오는 힘을 갖는 것, 주는 대로 먹는 게 아니라 스스로 먹을 거리를 정해보는 것. 제 아무리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운명에 구속되어 있다고 해도.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순한 자식인 알암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주검이 되어 돌아왔는데, 가해자는 이미 회개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 그런데 아내와 친한 김 집사는 “하느님의 깊은 섭리를 인간인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거나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셨다면 우리도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라는 말만 되뇐다. 어떤 경우에서든 좋은 게 좋은 거고, 사랑과 행복과 용서, 수행, 감사, 회개 등만 외치는 사람이 있다. 마치 자기계발 중독자들이 “사람들은 이렇게 쉬운 걸, 알려줘도 하지 않는다. 하면 되는데 단지 안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모두의 사정과 그들이 처한 환경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것은 애써 무시한 채.
그러나 남편. 글의 화자인 남편은 말이 없다. 마치 남처럼. 제3자처럼. 그러나 ‘좋음’과 ‘나쁨’, ‘행복’과 ‘절망’을 함께 볼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그 아내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아이를 앓은 아비가 아니더라도 다만 저열하고 무명한 인간의 이름으로 그녀의 아픔만은 함께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청준 <벌레 이야기> 1985)
사실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나의 불온한 면에 대한 사랑도, 바보 같고 나쁜 면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리고 그 모두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