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The Godfather, 1972,1974)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1개월 ago
DANYA

청년 시절의 비토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터전을 꾸리던 청년 시절 비토 콜레오네와 친구들 앞에 돈 파누치가 나타난다. 파누치는 보호비 명목의…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는 힘

2개월 ago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타짜(2006)』 영화 『타짜』의 아귀는 동물적 본능대로 살아간다. 유대관계나 정과 믿음보다 생존과 이익의 나침반대로만 움직이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 죄의식에 관한 보고서

2개월 ago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1866)』   자기 신념과 죄의식 1865년.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총살형을 앞두고 풀려난 이후에 『죄와 벌』을…

행복은 기대에서 현실을 뺀 것

2개월 ago

무한의 계절 속에 굳이 보는 건 종말이다. 새순이 올라오는 계절에 나의 눈은 주변에 흐트러져 있는 죽은 이파리들에 머물고, 환한 아이들의…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3개월 ago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때? 우리가 살면서 뭔가에 이유를 대잖아. 이유를 100가지도 댈 수가 있어. 그게 루저 마인드야. 자꾸 핑계대고,…

영화 브루탈리스트(Brutalist, 2025) – 왜 건축인 거죠?

3개월 ago

브루탈리스트(Brutalist, 브래디 코베, 2024) 여하튼 이 부다페스트 출신의 유대인 건축가가 아메리칸이 살아 숨쉬던 미국에 당도하여 펼쳐지는 고난과 성취와 실패와 고통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3개월 ago

  그녀가 나를 보았다. 장난꾸러기 아이같은 하얀 미소, 그렇게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내 눈엔 40명이 북적대는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아픈 가시 같은 사랑

3개월 ago

1 짙은 어둠 속에 있었다. 생은 그늘졌고 가족은 병들었다. 어느 이민자의 삶처럼 가족은 세계를 겉돌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몰랐고,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몰랐다. 삶에 가족이 침투할 공간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가족은 모두 제각기 살았고 제각기 버텼다.   생은 지리멸렬했다. 생존이라는 증명서는 쉽게 교부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를 입학하던 무렵 엄마를 잃었다. 고독 속에서 아버지는 살았다. 거칠고 모난 시장 바닥에서 아버지는 지지 않고 물건을 더 많이 떼오기 위해 언성을 높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의 안위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시장바닥에서 일하다가 운명처럼 엄마를 만났고 결혼해서 나와 동생을 낳았다. 아버지는 도매시장의 양념동에서 마늘과 각종 양념들을 팔거나 납품하며 살았다.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늘 마늘 여러 알이 들어 있었는데, 퇴근 후에는 늘 식탁 위에 마늘 몇 개를 올려놓고 방에 들어가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엄마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성에 차지 않거나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화내고 윽박지르는 그를 엄마와 나는 증오했다. 아버지는 홀로 술을 마셨다. 형제와 연락하는 일도 적었고, 외부에서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늘 외로워 보였고 또 괴로워 보였다. 취기 오른 아버지는 방이 떠나가라 웃으며 티브이를 보다가 잠들곤 했는데, 새벽 세 시가 되면 귀신 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그것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출근도 어두운 길을 홀로 걸었고 퇴근도 어둑한 뒷골목을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의 삶은 고독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가족이 없었고 사랑을 몰랐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몰랐다. 늘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슬픔이었다. 문드러진 몸으로 한 발자국도 스스로 내딛지 못한 채 골방에 갇혀서 나는 살았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도, 비 내리는 음습한 그늘 아래에서도 똑같았다. 나의 몸은 새집증후군과 중증 아토피로 너덜거렸고, 온몸이 소나무 껍질처럼 짓이겨져서 진물이 처마 밑을 타고 흐르는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열아홉 살 무렵 가을의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눈물이었다. 다리를 펴면 다리 살이 찢어졌고, 팔을 펴면 팔 안쪽 피부가 진피층을 드러내며 갈라졌다. 지이익거리는 소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나는 고통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신이 내린 벌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벌어서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는 일이 전부였다. 엄마는 울었고 아버지는 화를 냈다. 빌어먹을 세상, 도대체 기댈 곳이 없다며 우리 가족은 전국을 누볐다. 참숯가마 찜질방에서 온몸을 지지며 목초액으로 샤워를 하거나 죽염을 미숫가루처럼 퍼먹었다. 대구 한의원에서 배독요법을 한다며 하루종일 목욕탕에서 땀을 빼기도 했고, 대학병원에서 각종 임상실험과 진드기 치료, 인터페론 주사, 면역치료를 하고 한약을 물처럼 마시는 등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생은 지랄맞음이었다. 엄마는 여자로 살지 못했다. 사춘기 내내 남자 형제 넷과 동거했다. 다섯 형제 중에 엄마만 여자였으므로, 희생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전쟁터 같은 시장 바닥은 늘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흘러갔고, 그 속에서 엄마의 요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라서 청소하고, 여자라서 상차림을 도왔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외간 남자를 만나는 일도 할머니는 거부했다. 자유가 결박된 삶. 엄마는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으나 그 어떤 자유도 가지지 못한 채 나이를 먹었다. 그런 엄마와 아버지가 만나서 결혼했다. 우연이었고 한편으로는 필연이었다.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를 낳았고, 동생을 낳았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았다. 헤픈 씀씀이, 술을 물처럼 마시는 일, 가족에게는 막 대하면서 남에게는 간과 쓸개마저 퍼주려는 행동, 전날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력, 항구와 시장에서 다진 거칠고 모진 말투, 급하고 드센 성격과 권위주의가 짙게 밴 사고구조 등을 엄마는 힘들어했다. 엄마의 한풀이는 끝이 없었다. 살풀이하듯 엄마는 악다구니하며 온갖 아픈 기억을 쏟아냈는데, 그럴 때면 정말 굿하는 사람 같았다. 말의 흐름은 끝이 없었고, 어두움은 짙었다. 나는 짓이겨진 피부로 엄마의 한풀이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생은 핏물로 엮은 감옥 같았다. 그것은 너무 끈끈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동생은 홀로 자랐다. 홀로 컸고 홀로 고민했다. 그에게는 살아가는 일 자체가 짐이었다. 그늘 짙은 가정 아래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공부했고 홀로 학교에 들어갔으며 홀로 학교에 낼 돈을 벌었다. 직장인 밴드에 들어가 공연을 하거나 기타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흔들리는 가족 속에서 동생만은 저 스스로 몸을 가누며 버텼다. 버텨서 살았고, 꿈을 꾸었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가족이었다. 나와 동생은 나와 동생은 엄마와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면서 불안과 고독을 밥처럼 씹었다. 수없이 맞으며 악바리 근성을 키웠고, 끊임없는 다툼 속에서 살며 분쟁을 조정하는 법을 비웠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아버지처럼 악바리로 생에 매달려야 했고, 엄마처럼 끈질기게 생이 휘몰아치는 강바람에 맞서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약했다. 홀로 버티기도 벅찼다. 우리 가족은 무너지는 배 속에 있는 사람들처럼 무기력했다. 도대체 인생에 맞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매일 밤 나는 그렇게 하늘에 물었다.     2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갔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아버지는 멀건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빠진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괜찮냐는 말에 괜찮지 그럼이라고 대답하는 무심함, 나는 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숨을 헐떡거렸고, 가슴 통증을 느꼈는데,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아버지는 스스로 119를 불러 병원에 갔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도대체 정신이 없다며,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아버지를 엄마는 나무랐다. 아버지는 13일간 병원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았다. 병원이 감옥 같다며 지겨워했지만, 별수가 없었다. 의사가 “죽고 싶소”라고 하는 통에 꿀 먹은 병아리처럼 8인실의 병상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병실은 좁고 시끄러웠다. 아버지는 매일 창밖을 넋 놓고 보거나 병실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했고, 때로는 제 몸을 벗어나 세상을 유랑하듯 떠도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말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구나...하고.” 시간이 흘러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애썼다. 어느 계절에 한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밥을 먹을 때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아파보니까 네 마음을 알겠더라.” 뜻밖의 고백이었다. 엄마가 화를 냈다. 그것 좀 아팠다고 뭘 안다고 그러냐고, 역정을 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에서 진심을 읽었다. 어쨌든 죽을 것만 같았다는 느낌은 본인에게만은 진실이었고, 나는 그것과 내 고통을 비교하는 일을 두고 옳고 그름을 말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아버지가 뒤이어 말했다. 너를 알겠다고, 이해하겠다고, 너의 마음이 어땠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알겠다고 내게 고백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옛 내 모습을 떠올렸다. 망막박리증, 백내장, 비강 낭종, C형 간염, 유리체절제술, 새집증후군, 통풍, 천식 등을 앓았던 순간들. 하루하루가 눈물이고 고통이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권위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떠맡아서 우리를 키우던 엄마, 홀로 고독하게 성장해갔던 동생과 늘 아픔 속에서 방황하던 내가 새벽의 그늘 어딘가에 있었다.…

영화 듀얼(Duel, 1971) – 공포는 이미지다

3개월 ago

“이건 내 인생에 없어도 될 20분일 뿐이고 날 휘감고 있던 끈들은 이제 끊어질 거야.” - 데이비드 맨   공포는 이미지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 2023) – 인생의 타이밍

3개월 ago

인생의 타이밍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기다린다고 해서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스스로 걸어가 따먹거나 그것을 선택의…